티스토리 뷰

20180909_crypto_00

[비트코인 현상 블록체인 2.0] 2: 비트코인의 시작

비트코인 제작자와 비트코인을 수신 받은 첫 번째 사람 이야기

2008년 10월 31일 암호학 전문가 및 아마추어 등 관련자 수백 명이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라는 이에게 메일을 한 통 받았다. 그는 "저는 신뢰할 만한 제3자 중개인이 전혀 필요 없는, 완전히 당사자 간 1:1로 운영되는 새로운 전자 통화 시스템(비트코인)을 연구해오고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9페이지짜리 백서(white paper)의 링크를 함께 보냈다.


20180909_crypto_02

<비트코인 백서>


나카모토의 연구를 검토하기 위해 초대된 연구자 커뮤니티 중에 사이퍼펑크(Cypherpunk) 운동가들도 있었다. 사이퍼펑크는 테크니션 마인드를 가진 활동가들로 구성된 일종의 연합체이다. 사이퍼펑크 사람드에게 익명 디지털 통화 시스템이라는 개념은 낯설지 않았다. 사실 그들이 처음 구상했던 큰 그림 안에 있는 개념 중 하나 였다. 단지 아무도 이를 실현하지 못했을 뿐..이를 실현하기 위한 시도는 다수 있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었다. 그래서 나카모토의 이메일을 받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서를 읽기 귀찮아했고, 비트코인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을거란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20180909_crypto_03


하지만 나카모토는 단념하지 않았다. 자신의 시스템은 두 가지 혁신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는 블록체인이라는 절대 침범되지 않는 누구나 쓸 수 있는 원장(Ledger)을 통해 누구나 거래의 유효성을 검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일련의 금전적 인센티브로서, 개발 컴퓨터 소유자로 구성된 네트워크가 장부를 업데이트할 유인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면이 시스템에 해커와 대항할만한 힘을 부여해 투명하게 유지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나카토모의 컴퓨터에 비트코인 소프트웨어가 깔리고 그 프로그램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1번 노드(Node Number One)'가 만들어졌다. 그는 자신이 사용하기 위한 디지털 '지갑'도 만들었는데, PC에서 쉽게 비트코인을 그 '지갑'으로 옮길 수 있었다. 현재는 이 네트워크에 전 세계 유저들이 속해 있으며, 채굴을 위한 컴퓨터 작업 수행 필요량은 상당히 높아졌다.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의 최초 어댑터였다. 이제 그는 두 번째 어댑터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53세 중년남성 할 핀니(Hal Finney)라는 사람이 나카모토의 시스템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 둘은 2009년 1월 10일부터 2주짜리 특별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들은 이메일을 통해 서로 협업하고 노트를 공유했으며, 비트코인 프로토콜을 가동하고 실행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핀니는 '2번 노드'가 되었고 나카모토는 핀니의 지갑으로 비트코인 10개를 옮겼다. 핀니는 이제 비트코인을 수신한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비트코인 이전의 디지털 화폐

여느 훌륭한 발명품의 탄생 과정처럼 비트코인도 이전 발명가들의 업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이퍼펑크는 가상화폐의 아이디어를 가장 처음에 제공한 이들이다. 그때 당시 사이퍼펑크의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면 가상화폐에 대한 아이디어들도 언급되고 있고, 때때로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B머니(b-money), 해시캐시(hashcash)라는 프로젝트들이 나왔었지만 그다지 실용적인 것이 아니었다. 데이비드 차움(David Chaum)이라는 사람이 개발한 디지캐시(DigiCash)는 당시 익명 가상화폐라는 개념을 주류 사회로 등장시킨 주역이다. 디지캐시도 제3의 중개자가 없는 P2P 지불의 원칙인 비트코인의 중개자 우회 특성(Middleman-Bypassing)을 공유하고 있다. 1990년대 데이비드 차움의 아이디어는 계속 발전해나갔고, 차움은 시장이 스스로 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을 하는 모델을 꿈꿨다.


그런데 디지캐시는 빠르게 성장한 것만큼 빠르게 추락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비자도 모두 디지캐시 IPO에 참여하지 않았고, 은행들도 디지캐시 발행을 중단하고 라이센스도 파기했다. 은행과의 라이센스가 파기됨으로써, 디지캐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디지캐시는 왜 망했을까? 디지캐시는 단순한 전자 지불 솔루션이 아니었다. 디지캐시의 암호화 기능은 그 당시 최첨단 수준이었다. 사용자 개인정보가 완벽히 보호되고, 지불 처리를 위해 중개자와 관련 비용을 제거했다. 이런 측면은 당시의 일반적인 사고를 훨씬 앞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이기에는 당시의 사회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당시 은행과 기업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전자 상거래였으며, 이들은 어떻게 하면 전자 상거래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디지캐시는 그 솔루션을 제시했지만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었다. 은행과 기업들은 디지캐시 대신 신용카드 or 직불카드, 페이팔 같은 솔루션들을 선택했다.


비트코인은 왜 디지털화폐로 주목을 받았을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기존 금융권에 대한 대중의 반감은 비트코인의 등장을 쉽게 만들었다. 나카모토가 처음에 정부와 은행, 금융 중개자 등 신뢰할 수 있는 제3자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비트코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점을 잊지 말자.


나카모토가 제시한 솔루션은 두 가지 였다. 첫 번째 솔루션은 굉장히 획기적인 '블록체인'이라는 원장 기술이다. 이 기술은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시간순으로 기록된 거래 내용들을 거래 상대방의 원장과 비교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사람들이 거래를 할 때 지불 실패를 막을 수 있는 기술이었고 결국 디지털 위조를 불가능하게 하는 구조였다. 두 번째 솔루션은 네트워크 컴퓨터의 소유자가 필요한 전기 및 컴퓨팅 리소스를 확보해 블록체인 장부를 유지/관리하는데 필요한 인센티브를 정확하게 마련하는 채굴 보상 알고리즘이다.


그 후 많은 이들이 이토록 열광하고 비트코인이 기술 마니아들의 새로운 골드러시의 주인공이 되고 있을 2010년에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의 세계에서 사라졌다.


20180909_crypto_04



비트코인 현상, 블록체인 2.0
국내도서
저자 : 마이클 케이시(Michael Casey),폴 비냐(Paul Vigna) / 유현재,김지연역
출판 : 미래의창 2017.07.10
상세보기


댓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방문자 현황
Total
Yesterday
Today